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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0. 10世 〉40. <부정공>곡수사(曲水祠)휘대성(諱大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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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부정공>여절교위충무위부사과증통훈대부호조좌랑매창처사공휘대성묘갈명(勵節校尉忠武衛副司果贈通訓大夫户曹佐郎梅窓處士公諱大成墓碣銘)
勵節校尉忠武衛副司果贈通訓大夫户曹佐郎梅窓處士公諱大成墓碣銘 湖南古多隱德而生而賢士歿而祭社者曰故梅窓處士趙公諱大成字成之也生於 正德庚辰九月四日天姿重厚風儀清高聰穎過人儼然早成幼讀小學興感不己事親以孝愉容務悦不違其志病致憂喪致哀友愛三弟宿同衾食同案田廬奴僕相與推讓爲政於家者一以小學爲則沈潜經傳以及濂洛群書無不體究尤用力於性理象數之學有所著書而無傳爲甞與晴莎鄭公沼友善又從李一齋遊多有酬唱公無意榮塗逍遙林泉築亭於浴川之梧枝愛其溪山扁以二樂作詩寓志聞有佳麗輒遊賞而歸翛然有出塵之想銓曹欲薦于 朝公貽書之之公曾拜勵節校尉忠武衛副司果不就耻名藏光物莫如競古所謂不可得以富貴親疎者公實有爲 嘉靖丙寅閏十月念二日考終享年四十七後贈户曹佐郎公淳昌人以高麗檢校大將軍諱璋爲初祖前副正諱瑜罔僕於我朝公其五代孫也曾祖諱智崙察訪友篤昆季亭搆相好祖諱穩直長考諱淑瓘縣監妣靑松沈氏其父將仕郎光鵬也公娶長興馬氏承旨世駿女擧三男二女男惕怡進士悦參奉女適進士安璜司果薛海内外孫曾不盡錄而惕之孫時一進士怡之子㫾有文行公葬于順天雙巖書堂洞負艮原從先兆也閱三百餘年而墓尚無銘公后孫昌錫昌駿使永學請余銘之余素服公風節靡敢以不文辭援筆而爲銘銘曰相好古家公险其美孝悌爲政儀式鄉里居貞用晦養粹嵒扃保我眞樂玩理硏經昭代逸民匪公伊誰發潜闡幽庸吿無涯 恩津 宋秉璿 撰 여절교위충무위부사과증통훈대부호조좌랑매창처사공휘대성묘갈명(勵節校尉忠武衛副司果贈通訓大夫户曹佐郎梅窓處士公諱大成墓碣銘) 호남에는 예로부터 숨은 덕을 지녀서 살아서는 어진 선비요 죽어서는 사당에서 제사 를 받는 자가 많다. 고(故) 매창처사 조공의 휘는 대성(大成), 자는 성지(成之)인데 그 분도 그 중 한분이다. 공은 정덕 경진년(一五二O) 九월四일에 태어났는데 천성이 중후하고 풍의가 청고하 였으며 총명이 남달라서 의젓함이 어른 같았다. 어려서 「소학(小學)」을 읽고는 느끼는 바가 많아 어버이를 즐겁게 하기에 힘쓰고 부모 뜻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어버이의 병환에는 근심을 다하고 상례에는 슬픔을 다하였으며, 세 동생과 우애있게 지내 한 이불을 덮고 자고 한 상에서 밥을 먹었으며 논밭과 집종들을 서로 사양하여 집안 꾸며 나가기를 소학에 따라 실천하였다. 경전(經傳)에 깊이 몰두하여 주자학(朱子學)의 여러 책을 배워 모두 자기 것을 만들었으며 또 성리학(性理學) 가운데서도 상수학(象數學)에 힘써 저술한 책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일찍이 청사(晴莎) 정공(鄭公) 소(沼)와 친하게 지냈고, 또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노닐면서 많은 시를 읊었다. 공은 세상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임천(林泉)을 소요하면서 욕천(浴川:곡성(谷城))의 오지리(梧枝里)에다 정자를 지었는데 그곳의 시냇물과 산을 좋아하며 정자에다 이요정(二樂亭)이라 현판하였다. 시를 지어 뜻을 붙이고 경치 좋은 곳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문득 가서 구경하고는 돌아와 마치 이 세상사람 아닌 신선의 풍도가 있었다. 전조(銓曹:여기서는 이조(吏曹)를 말함)에서 조정에 천거하려 하였는데 공은 편지를 보내 이를 말렸다. 공은 일찍이 여절교위(勵節校尉)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배수하였는데 이는 종친(宗親)의 외손 (外孫)이기 때문에 이런 음보(蔭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이름이 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감추고 남과 경쟁하지 않으니 옛날 이른바 「부귀와 친소(親疎)로써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공에게 있었다. 가정 병인년(一五六六) 윤十월 二十二일에 고종명하니 향년 四十七세였는데 후에 호 조좌랑에 추증되었다. 공은 순창인으로 고려 검교대장군 휘 장(璋)을 시조로 하며, 부정(副正) 휘 유(瑜)는 절의를 지켰는데 공은 그의 五대손이다. 증조 휘 지륜(智崙)은 찰방인데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상호정을 지었다. 조는 휘가 온(穩)인데 벼슬은 직장(直長)이며 고 휘 숙관(淑瓘)은 현감이며 비(妣) 청송심씨(靑松沈氏)는 그 아버지가 장사랑 광붕(光鵬)이다. 공은 장흥마씨(長興馬氏) 승지(承旨) 세준(世駿)의 딸을 맞아 三남二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척(惕)과 진사 이(怡), 참봉 열(悦)이며, 딸은 진사 안황(安璜)과 사과(司果) 설해(薛海)에게 출가하였다. 내외손과 증손은 다 기록하지 못하는데 척의 손자 시일(時一)과 이의 아들 상(㫾)은 문학과 행실로 소문이 났다. 공은 순천 쌍암 서당동 간좌(艮坐) 언덕에 장사지냈는데 그곳은 선영(先塋)이다. 지금까지 三백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묘갈명이 없어 공의 후손 창석(昌錫)·창준(昌駿)이 영학(永學)을 시켜 나에게 명을 청하였다. 나는 평소 공의 풍도를 사모하고 있었으므로 감히 글을 못한다고 사양할 수 없어 붓을 잡고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상호정 옛 집안에 相好古家 공은 그 아름다움 이어 받았네. 公趾其美 효제로 가정 다스리고 孝悌爲政 고을의 모범되었네. 儀式鄉里 곧게 살며 빛을 감추고 居貞用晦 암혈에서 수양하며養粹嵒扃 나의 즐거움 간직하고 保我眞樂 경서와 이치 궁구하니 玩理硏經 태평성대의 뛰어난 분昭代逸民 공 아니고 그 누구랴 匪公伊誰 가리고 숨겼던 덕 드러내 發潜闡幽 영원까지 알리노라. 庸吿無涯 恩津 宋秉璿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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